일상생활/잡설

내 행복의 주권자는 나

Page T 2014. 8. 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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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저당잡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스스로의 방식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 해도,

누군가가 주입시켜놓은 가치에 묶여

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행해질 것 같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두렵고, 우울하게 된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여기며 탐탁치 않게 본다.


스스로 행복하고자했던 사람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행복의 주권을 저들에게 넘겨버린다.


그리고 내가 아닌 너에게서 행복을 찾는다.


백 점 시험지가 행복이고, 

좋은 직장이 행복이고, 

많은 돈이 행복이고, 

아름다운 당신이 행복이된다.

시험과 취업을 위한 학원,

로또와 연금복권,

연애 상담프로그램과 연애 블로그의 인기는

한국의 현대인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방증한다.


이걸 추구하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그걸 얻어서 행복하다면 축하드린다.

계속 행복하시라. 

그런데, 그걸 남한테 강요하지 말았으면 하는거다.


어느 오후 카페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크림치즈베이글을 주문하고

도시낭만을 즐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 쌍의 연인이 옆 테이블에 앉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요즘은 옆에 시끄러운 무리가 있으면 공부와 사색에 집중이 안되어

보통 자리를 옮기거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거나 하는데

이어폰도 없고 자리도 명당이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연인들의 대화토막을 음악삼아 흘려보내며 

독서와 사색에 집중을 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이벤트가 벌어졌는데,

그 이벤트의 시작은 아메리카노였다.


남자는 아메리카노가 쓰다고 한 마디 했다.

여자曰 '아닌데? 괜찮은데?'

남자는 빈정이 상해서 

커피를 내리는 타이밍과 원액의 보관 상태, 

다른 커피 전문점 아메리카노의 맛 등을 이유로 제시하며

'이 아메리카노는 쓰다'고 재차 주장했다.

여자는 자신의 말에 동의를 해주지 않는 남자에게 마음이 상하여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역설하며 남자의 태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서로의 감정은 약간 격앙되었고 대화는

과거에 싸웠던 일들, 바뀌지 않는 현재, 전 남친/전 여친과의 비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카페 데이트는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남에따라 파경에 이르렀다.


현대 사회에서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갖춰야 할 기본덕목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란 그 사람의 행동과 모습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순간의 경험과 감정들이 축약되어 있는 것이

그 사람이 현재 하는 행동이며 말이다.

그것이 법적으로 잘못됐는지 도덕적으로 잘못됐는지를 떠나서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나름 힘든 인생길을 살아온 사람에 대한 경멸이며 모독이다.


살아온 모든 인생의 경험을 통하여 결론을 내린 남친의 '이 아메리카노는 쓰다' 라는 정의를 

'아닌데?' 라는 말로 간단하게 부정해 버린 여친은 

인격모독에 준하는 인문학적 범죄를 남친에게 저지른 것이며

여친의 '쓰지 않다' 는 주장의 단순파괴를 위해 

끝까지 '이 아메리카노는 쓰다'고 주장했던 남친의 행위 또한 범죄인 것이다.


차라리 여친은 

쓴 맛을 느끼는 남친 미뢰의 민감함에 대한 칭찬을 하며 시럽을 가져다 주든지

남친은 

달콤한 맛을 더 잘 느끼는 여친의 혀에 대해 부러움을 표하며 

꿀엄지를 세워준다든지 했다면 

인문학적 성공과 더불어 남녀간 케미적 상승도 기대해 봄직 할 것인데,

왜 넌 내 말에 동의하지 않지?

그건 날 사랑하지 않아서야! 마음이 식어서야! 라고

장난감 안 사준 엄마를 계모취급하는 5살 꼬맹이들처럼 

서로 울부짖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뭔가 숨이 턱 막히고 뇌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스트레스가 밀려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는데

아메리카노가 쓰긴 썼다.


근데 저 남자는 쓴걸 쓰다고 못했다.

개불행한 남자인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

행복을 자신이 아닌 여친, 남친에게 얻으려고 해서 일어난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행복은 내 안에 있다.

남친, 여친, 부, 명예, 친구, 가족은 행복의 윤활제는 될 수 있어도

내 행복의 핵심은 아니다.


만약, 행복의 핵심을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에게 놓는다고 하면,

나는 그 다른 무엇인가에 광기어린 집착을 부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나는 영원히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난 남친으로(여친으로) 인해 행복해지고 싶은데,

남친이(여친이) 자꾸 날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그럼 남친은(여친은) 나의 행복을 상실하게 한 배신자요,

내 인생의 역적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하고싶은 말 하나는,

'행복은 내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자는 것'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이, 기성세대가, 

행복이라고 정의해 놓은 그 정의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게된다면,

'어머, 이상한 사람이야!'

'헐, 대박!'

그러면서 '세상에 이런일이' 나 '화성인 바이러스'에 제보하지 말고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그러면서 넘어가자는 것


요렇게만 된다면

더 좋고 행복한 세상이 될텐데 그냥 생각해봤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돼라.

참 좋고 공감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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