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왼쪽 동공은 풀려있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병원의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다.
눈을 감는 기능이 마비되었는지
스스로 눈을 닫지 못하셨다.
흰자위는 충혈되어 빨개져 있었다.
손으로 눈을 감겨드려도 곧 눈꺼풀을 다시 여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충혈된 눈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드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코 뼈는 으스러져 콧대가 움푹 패여 있었다.
(하루에 12 만원이나 받아쳐드신 첫 번 째 요양 간호사의 작품)
으스러진 콧대 아래로 콧줄이 아버지의 콧구멍을 막고 있었다.
콧줄 주위로 먼지들과 피가 모여서 딱지가 되었다.
치아는 치과에서 심은 금니 몇 개만 남아있었다.
혀와 입 천장은 무슨일인지 피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입을 계속 벌리고 있었다.
간호사는 '코가 가래로 막혀있어서' 그런거라고 했다.
다물 수 없던 입은 점차 건조해졌고
건조해진 쪽으로 피가 스며들고 딱지로 굳어졌다.
아버지 팔에 있는 살은
가죽만 남아서 뼈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다.
작고 빨간 점이 여러군데에 찍혀있었다.
여러가지 검사 명목으로 찔린 수십, 수백 개의 주사바늘 자국이다.
아버지의 손.
그래도 아버지의 손에는 온기와 힘이 있었다.
아버지의 인생을 버티고 이끌어온 그 손.
유일하게 아버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명백한 의사의 잘못으로
아버지께서 수개월간 가장 극심하고 극악한 고통을 느끼게 한 곳이다.
지들이 그렇게 만들어놓고
지들이 또 치료한다며 쌩 난리를 쳐놓은 곳.
그들은 치료하다 말고, 치료 보조인으로 보호자를 부른다.
아버지의 팔을 잡으란다.
허벅지에 소독약을 붓는다.
아버지가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눈을 부릅뜨고
안나오는 목으로 안간힘을 다해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이거 놔라!, 놔라!'
나는 못들은척 하며 팔을 계속 잡고
아버지의 얼굴을 피해 뒤쪽을 바라본다.
뒤에는 의사들이 소독이란걸 하고 있다.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고개를 밑으로 숙인다.
아버지가 먹이고 키워낸 이 내 손으로
아버지를 잡고있다.
슬프다.
'왜 나한테 이걸 시킬까.' 의문이 들었지만
급하다니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시키니까,
원래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병원에서는 '보호자는 나가있으라'고 하더라.
.
고통의 붕대 교체 시간이 끝나면,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입을 움직이신다.
숨소리가 더 큰 탓에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경우는 몇 안된다.
그나마 듣는 말도
'주차비 많이 나오니 가거라.'
정도였다.
왜 나가라는지 안다.
지옥의 붕대 교체가 끝나면
생지옥의 썩션 시간이다.
아마 또 추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시는 것이리라.
의사와 간호사는 얇고 길다란 막대기로 그 약해질대로 약해진 목구멍을 1 시간 이상 쑤셔댄다.
몸 속에 뭉쳐서 빠져나오지 않는 피떡과 가래를 빼기 위한 작업이란다.
아버지는 헛구역질과 눈물속에 팔만 아래위로 저으며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딘다.
아버지는 물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그렇게 피 나오게 목구멍을 쪼아댄 후,
밀려오는 갈증.
'석아 물좀 줘라. 석아. 석아.'
애타게 나를 부른다.
애써 무시하다가
계속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병실 밖에 잠시 나가있는다.
아버지는 타는 목을 축일 행복조차도 박탈당했다.
.
병원?
의사?
헛웃음만 나온다.
.
멀쩡한 허벅지를 떼어내
엄지발가락에 이식하신 분.
허벅지의 혈관이 아주 좋고 깨끗해서
이식해도 전혀 문제 없다고 하신 분.
그리고선
허벅지를 걸레로 만들어 놓으신 후.
퇴원하라고 하신 분.
재입원 후에는 코빼기도 안비치신 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대형병원 성형외과 의사.
3 대 의사 중 하나에 도달하기 위해 오늘도 애쓰신다는 분의 작품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는데,
의료분쟁과 소송이 끝나면 올릴 예정이다.
아버지는
매일 이 허벅지에
소독약을 붓고
거즈로 밀어내고,
그렇게 말로는 표현 못 할 고통을 받으시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가시는 길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것이 죄송하여
오늘도 날 붙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 또한,
항상 몸도 마음도 그 누구보다 바르고 깔끔하셨던 아버지의 건강하던 시절의 모습과
병원에서 이렇게 볼품없어지고 사지가 흉해지는 현재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를 의사의 마수에서 지켜내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
밉다.
조금만 더 똑똑했어도. 조금만 더 힘이 있었어도. 조금만 더 영리했어도.
이렇게 아버지를 고통중에 보내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에, 분하다.
지금은 분에 못이겨 지치는 마음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이틀 째 되던 날,
아버지는 뼛조각이 되고, 뼛가루가 되어, 유리 항아리에 담겼다.
더 이상 그 고통을 받아도 되지 않는다는 것에,
아버지께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갈 때 마다 그 불편한 몸을 세우고 활짝 웃으며
'석이 왔나.' 반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말 많고 탈 많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게 계실,
그리고 행복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봐주실,
내 아버지의 명복을
누구라도 한번만 더 빌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소송과 분쟁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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