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소천하신 다음 날
아버지의 제자 분이 찾아오셨다.
매 년 추석과 설에 아버지 앞으로
40 여년 이상 안부 선물을 보내주신 분이었다.
전화통화로 목소리만 몇 번 들어보았지,
얼굴을 실제로 뵙는 것은 처음이었다.
들어오시는 모습만 보아도
올곧고 차분한 학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
'아버지는 매우 바른 분 이셨어요.'
'제가 계성여고를 다닐 때 선생님을 처음 뵈었죠.
학생과 선생님으로 처음 만난거에요 그 때.
당시에는 제가 그렇게 수학을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자주 찾아가서 수학 문제를 여쭤보곤 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아주 오랫동안 친절하고 자세하게 문제를 풀어주시곤 했어요.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러 오라고 말씀하셨죠.
그 때는 교사들 몰래몰래 과외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일단 교사가 되면 과외는 절대 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다른 교사들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저를 포함한 학생들의 질문에
자세히 답을 해 줄 시간이 있었던거에요.
그래서 저는 모르는 문제만 있으면 선생님 찾아가서 여쭤보곤 했어요.
그리고선 고 3이 되었는데,
가정형편이 좋아지질 않아서 동생들 돌보기도 벅찬 상황이었어요.
대학교 가면 등록금도 만만치 않으니까 걱정이 되었죠.
그래서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를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공부를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대학 공부는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담임선생께 말해서
간호사관학교에 원서를 냈어요.
선생님이 그 소식을 들으시고는
저를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넌 수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왜 간호사관학교에 지원했느냐' 물어보셨어요.
저의 형편을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는
일단 학교에 들어가면 당신이 도와주실테니
원하는 곳에 지원하여 입학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당신의 후배가 되라시며 당신이 다니셨던 학교
수학과를 추천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연세대학교 수학과에 들어갔고,
형편이 힘들어질 때마다.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졸업을 하고
저도 교사로 평생을 살아왔죠.
교사가 되면 생각보다 유혹이 많이 들어와요
과외라든지
다른 돈 되는 길로 빠지는 유혹이 많이 있어요.
선생님 생각하면서 그런 곳에는 일절 발 들여놓지 않았어요.
선생님 처럼 바르고 곧으면서도
능력있는 사람은
정말 보기 힘들어요.
저희들이 찾아간다고 해도 극구 만류하셔서
멀리서 선물만 보내드렸네요.
그 은혜를 다 갚지도 못했는데...'
본인 자신이 선생님이자,
또한 아버지의 제자이셨던 그 분은
아버지에 대해 많은 말씀을 남겨주셨다.
어쩌면
아버지의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나보다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더 많이 알고있는 분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나도 많이 알고 있었더라면...'
생각해보았지만,
그런 말을 일절 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에,
무의미한 아쉬움일 뿐이다.
.
'아드님,
약속 하나만 해요.
아드님 결혼식 때는
선생님처럼 연락 없이 그러지 말고
꼭 말씀 해주셔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제자 분은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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