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조심
옛날 서구권 좀비들을 생각해보자.
손아귀 힘만 센 느림보 멍청이,
마이클 잭슨 백댄서 알바나 하던 괴물인지 코미디언인지 모를 녀석.
그 당시 좀비들을 보는 시선은
무서움이라기보다는 측은함에 가까웠다.
좀비창작예술가들은
이 측은한 좀비의 좀권(Zom權) 향상을 위해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왔다.
그들은
좀비에게 달릴 권리, 점프 할 권리, 목소리를 가질 권리,
뇌를 가질 권리, 밤에 강해지는 권리 등을 부여하면서
조금 더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좀비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십 년 간 '더 나은 좀비 개발'에 매진했다.
개 중에 성공한 좀비들도 있지만
실패한 C 급 변태 좀비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숱한 실패의 기반 위에서
새벽의 저주, 28 일 후, 월드 워z, REC 등의 선 굵은 좀비 작품이 탄생하는 법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좀비의 볼모지,
좀비영화라곤 1 년에 1 개 찾아보기도 힘들고
가끔 뮤직비디오에서 백댄서로 일하는 좀비가 거의 전부이다 싶은 한국에서
'부산행'이라는 A 급 좀비 영화가 나타났다.
이토록 아름다운 좀비영화가
뜬금없이 한국에 나타나다다니.
.
영화가 끝난 후
나의 모습은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리바운드 점프를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하던
강백호를 본 안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부산행은 좀비물에 나오는 드라마적 요소를 한꺼번에 가져다가 사용했다.
그리고 그 많은 요소들을 단 2 시간 짜리 영화 안에 모두 집어넣었으며
신기하게도 영화의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좀비물에 자주 나오는 드라마적 요소를 꼽아보자.
대표적인 두 가지는
1. 각 캐릭터 간 갈등이
더 거대한 적인 좀비를 상대함으로써 해결되고
전우애로 승화되는 부분과
2. 좀비의 약점을 이용해서 탈출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좀비물은 위와같은 큰 틀 속에
개별 스토리가 묶여서 전개된다.
부산행도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한 두 부분이
영화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큰 틀 속에 묶여있는 개별 스토리의 개수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연인 스토리.
(야구단)
부부 스토리.
(임신한 부부)
모성애 스토리.
(엄마와 아들)
친구 스토리.
(야구단, 할머니들)
부성애 스토리.
(아버지와 딸)
등의 스토리가 있으며
그 스토리에서 파생되는
동료를 잃는 슬픔.
(을 관객이 공감하기 까지의 전개 과정)
감당이 안되는 적을 앞에 두고 생기는 이기적인 감정.
혹은 이타적인 감정.
(을 관객이 공감하기 까지의 전개 과정)
꿈같은 광경에 초연해지는(혹은 미쳐버리는) 심리상태.
(을 관객이 공감하기 까지의 전개 과정)
등이
놀랍게도 단 2 시간짜리 영화에 모두 녹아있다.
게다가
장소마저도 개방된 공간 + 폐쇄된 공간으로 나눠져서 진행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의 연결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말 대단하다.
심지어 마지막 즈음에는
'인간이 좀비에게 물린 후 자아가 분열되는 초기 현상'에대한 장면도
보여준다.
(좀비 변화 전 펀드메니저 & 천리마고속 상무)
위 부분은
메이져 좀비 영화보다는
좀비 게임에서 종종 다루는 요소인데
좀비계 최신 이슈다.
제작자가 좀비 영화 뿐만 아니라
좀비 게임도 해보면서 많은 연구를 한 것 같다.
단 한 편, 2 시간 짜리의 좀비영화가 이렇게 좀비의 장구한 역사와 테마를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다루며
오락성까지 겸비하다니
이정도로 믹스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
생물학을 전공했다면
아마 실제로 좀비를 구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작진의 강력한 내공이 없었다면 부산행은 아마 4 류 짜깁기 좀비 영화가 되었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고
재미와 스릴공포가 적절하게 배합된 명작으로 관객들 앞에 나타났다.
삼류 공포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는
'갑툭튀 + 큰 소리로 사람 놀래키기' 장면도 별로 없어서
공포와 스릴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간만에 피가 튀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부산행은
가히 한국 좀비영화계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만 하다.
해외 좀비 커뮤니티에 소개해도 절대 꿀리지 않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확한 스토리를 중점으로 두고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이라면
약간 어색한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좀비들이 각기춤을 추면서 우사인 볼트 급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생각 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부산행 2 도 나왔으면 좋겠다.
부산행 2 는 여자 아이가 여전사로 자라나서
백신찾으러 다시 감염 지역으로 진입하는 내용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결론 : 부산행은 한국 좀비영화 최고의 교과서로 남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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