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에서 언급하는 '오이란' 은 '최고의 오이란(=타유)'을 의미하는 것임을 미리 알린다.
홍등가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성형적 이목구비와 몸매,
밤무대 뽕짝 느낌의 의상,
필수 멘트 '오빠 놀다가앙~'
얼굴, 입는 옷, 말투
모두 똑같다.
영화 '사쿠란'도 어떻게 보면 '뻔한 매춘부의 뻔한 러브스토리'이다.
그런데 '사쿠란'은 그 뻔한 매춘 영화들 사이에서
급이 다른 '에이스 매춘 영화'가 되고자 한다.
'사쿠란'은 일반 매춘 영화와는 좀 더 다른 얼굴, 좀 더 다른 의상, 좀 더 다른 멘트로 관객을 맞이한다.
아름다움, 도도함, 교태로 지어진 자신의 특별한 속 살을 은근히 내보이며
'예쁘지? 아름답지? 가지고 싶지?' 관객을 유혹한다.
이 '영화 자체'를
작정하고 관객을 홀리기로 마음먹은
키요하
[유녀(=매춘부) 중 에이스급 유녀(=오이란)로서 영화의 주인공]
라고 생각하자.
더 재미있는 영화감상이 될 것이다.
예를들면,
위 사진과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해보자는 것이다.
'사쿠란'의 외모.
'유녀'는 예뻐야 한다. 어떻게 예뻐야 하냐면,
남자들이 유녀의 얼굴을 봤을 때 '아, 저 여자랑 자고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예뻐야 한다.
즉, 남자들의 성욕을 돋구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이란'도 당연히 예뻐야 한다.
그런데 예쁜 것 만으로는 오이란이 될 수 없다.
자신만이 지을 수 있는 특별한 표정, 느낌으로 상대를 홀릴 수 있어야 한다.
보는 사람이 단순한 성욕이 아닌 다른 다양한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영화에서 유곽(홍등가, 집창촌)내부는 기본적으로 원색인 빨간색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빨간색 주변에는 항상 다른 범주에 있는 색(보라색, 파란색 등)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또 유곽 구석, 혹은 중앙에 자리하고있는 풀과 꽃은 건전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화면을 꾸며주는데,
전체적인 빨간색과 그에 대비되는 색 그리고 자연물과의 조화는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면서도 色이 아닌 美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사쿠란'의 패션.
'유녀'는 홍등가 불빛 아래서 반 나체로 남자들을 유혹한다.
가슴과 성기를 드러내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자신이 성적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사쿠란' 의 목욕탕 장면은
자신을 성 상품으로 자아설정해버린 '일반 유녀'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이란'도 역시 성적 상품이다.
하지만, 오이란은 쉽게 당신의 상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 여성보다 더 세련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타나
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유녀'인지 '일반인'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오히려 유녀와 일반인의 중간선상에 포지션을 잡아
독특한 매력을 풍기며 당신의 넋을 빼놓는다.
'사쿠란'에서
선과 선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규칙적인 것 같으면서도 불규칙한,
사각형의 집합은
화려하면서도 단순하게 이루어진 색의 배열을
복잡하면서도 정갈하게 만드는 개체가 된다.
이 색과 도형의 조합은 영화를 더 몽환적으로 만들어주며,
관객에게 술 취한 듯한 나른함을 가져다준다.
'사쿠란'의 음성.
주연 배우(안나 츠치야)의 목소리를 말하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주연 배우의 목소리 들을 때 마다 김부선 누나가 생각나서 집중이 안됐다.
.
'유녀'는 신음소리를 교육받는다.
좋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좋지 않았는데도 좋았다고 말한다.
그게 '유녀'니까.
'남자'도 웬만큼은 안다.
상대방이 정말 좋은지, 정말 좋았는지...
그런데 유곽(홍등가)에서 그런 것을 따질 필요는 없다.
'내 성욕'을 채우러 왔기 때문이다.
'너'가 실제로 어떤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이란'은 당신이 고객이든 VIP든 성욕이 충만하든 뭐든 상관하지 않는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줄 안다.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즉, '유녀'는 이래야한다는 관습과 규정에 얽메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이란'은 '유녀'라는 틀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고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길 원한다.
영화 '사쿠란'의 감독은
'사쿠란'의 '오이란'스러움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17세기 에도시대가 배경임에도
21세기 오케스트라와 롹이 주된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21세기 음악이 이 영화에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객은 퓨전사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평론에 따르면)비교적 시대 고증이 잘 된 영화에서
갑자기 배경음으로 전자기타가 지이잉 울리고
드럼이 뚜둥딲딲 하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또 어울린다.
'유녀'들의 대화는 간단하다.
'오빠 놀다가지?'
'오빠 또 와~'
그리고 끝.
반면, '오이란'은
자신이 어떤 감정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있고
그 감정을 적정한 단어로 포장하여 표현할 수 있다.
직업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공감하는 대화도 할 수 있다.
영화는 크게 금붕어와 벚꽃을 상징으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금붕어는 화려하지만 어항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는 유녀의 삶을,
벚꽃은 주인공 '키요하'의 이상향(유곽 바깥세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벚꽃은
몇 번 키요하를 향해 피어오르는데
그녀는 왠지 행복해하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과 고민을 통해
키요하는
벚꽃 자체보다,
'벚꽃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어항을 빠져나와
사랑하는 사람과 벚꽃을 보러 간다.
영화는
적당한 비유와 상징을 통해
에도 시대 유녀의 삶을 문학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진정한 사랑의 가치는 이런게 아닐까?'
관객에게 제시한다.
영상미와 배경음악에 치중해
조금 부실할 수 있던 스토리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
이런 포인트를 잡아 영화를 다 보았다면
크레딧이 올라갈 때 쯤
영화 '사쿠란'은
어떤 관객에게는 최고의 '오이란'이,
어떤 관객에게는 그저그런 'C급 유녀'가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어땠냐면,
나에게 사쿠란은 오이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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