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영화감상

구타 유발자들 - 나, 너, 우리들의 모습

Page T 2014. 7. 4. 20:17
728x90
반응형


 

'구타유발자들'은


전체적으로

더럽고, 잔인하고, 지저분하고 불쾌하다.

영화는 불쾌함을 인물들의 행동으로 묘사해내고 있고,

영화 배경의 전부라고 볼 수 있는 고요하고 청명한 어느 시골 계곡은

불쾌한 인물들과 대비되어

관객이 더 거북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그 불쾌함을 만들어내는 영화 속 인물 면면을 들여다 보자. 



.



교수


교수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대변한다.

멋진 차, 뛰어난 재능, 능숙한 언변을 두루 겸비하여

일반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 그리고 부러움을 받는다. 

품위있고 점잖게 살아가는 이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다.



-교수(오른쪽)와 학생(왼쪽)이 벤츠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상황

학생: 빨간불인데 그냥 가요?

교수: 저런건 지키는게 바보야.

학생 :그래도 신호등은 지키라고 있는거잖아.





-과속 단속에 걸린 상황

경찰: 과속하셨네요

교수: 내가요? 언제?

경찰: (증거를 보여준다)

교수: 에이, 싼걸로 끊어주실거죠?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이 사회에서 엘리트란 어떤 존재인가?

전에 기업에 다니다가 퇴사하고 개인 사업장을 차린 아저씨와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그 아저씨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어디에나 통용된다고 말씀하셨다.

기업에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 원칙보다는 꼼수를 잘 부리는 사람이,

실력보다는 상사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 꼭대기에 서있더라는 것이다.

지금 내 자신도 그 아저씨의 말에 공감하고 있고

이제 회사에 들어가기 시작하고 회사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봐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법은 무시한 자기 위주의 생활자세.

무시하다 걸리면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스킬.

재능에 비례한 도덕적, 성적 타락.

영화는 이렇게 엘리트라는 존재에 대한 구타유발적요소를 짚어낸다.



.



여대생


여대생은 요즘 젊은 여성 세대를 대변한다.

자신을 꾸밀 줄 알고 당당히 표현할 줄도 아는 

일도, 학업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그런 여자.



하지만 무력하다.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교수를 보며

"그러면 안되잖아요" 말은 해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


숨이 멎기 직전까지 쳐맞고 있는 남학생을 보며,

서로 먹고 먹히는 부조리한 싸움을 보며,

그냥 옆에 서서 울고만 있는, 그런 여자이기도 하다. 





너무 자신의 출세길에 몰두한 나머지

교수가 자기에게 왜 접근하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여자이기도 하며,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했던 교수나

남학생을 개처럼 끌고다니며 괴롭히는 시골총각이나 

모두 쓰레기들인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벤츠를 모는 쓰레기를 택하는 속물인 여자이기도 하다.

(혼자 집에 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런식으로 흔히 김치녀로 비하되는 요즘 여성구타유발적요소를 짚어낸다.



.



마을 주민들


한없이 순박하다.

절뚝거리며 걷고있는 여대생을 시내까지 바래다 주고자 하며

모래사장에 묻혀버린 차 바퀴를 빼내려고 힘을 합쳐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마을과 전혀 관계 없는 외부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다.


그들 집단 내부는 철저히 권력과 폭력에 입각한 상하주종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계층 간의 부조리함은 외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잔인하다.





"얘가 돼지 잡을 때 어떻게 잡냐면요

야구방망이를 한 번 공중으로 '붕-' 휘드르는 거에요

그러면 돼지들이 어떻게 하게요?

똥오줌 못 가리면서 도망갈 것 같죠?

아니에요.


돼지라는게 특히 지 주인이라면 환장을 해요 환장을

왜? 맨날 밥 주고 그러니까-

밥 주는 줄 알고 맨날 대가리를 들이미는거에요 이게


그러면, 떡갈비가 되도록 패는거에요.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은데

얘는 돼지새끼가 자기를 보고 비웃었다는거야

왜 비웃니? 왜 비웃니? 그러면서 크하하하하하하"


그 집단 내부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야생이며

집단의 약자들은 쳐맞고 기어다닐지라도

강한자가 던져주는 콩고물(돈, 안전 등)에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 야생의 왕이 혹여 변덕이나 부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말이다.





"저새끼가 시켜서 그런거에요!"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 서로의 관계가 역전되거나 하면

껍질뿐이었던 복종심은

거대한 복수심으로 바뀌어


더 잔인하고 심각한 폭력을 재생산한다.


그리고 그 집단은 더 추악하고 더러워진다.





어딘가에서는 누구의 친구, 누구의 자식, 누구의 부모일 사람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일 그들은

학교, 군대, 직장, 거래처라는 집단 속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갑과 을이 되어 서로 물고 뜯고 물리고 뜯긴다.


특히 군대문화가 아직도 뿌리깊게 박혀있는

한국에서의 집단 문화는 그 야생의 강도가 더 심하다.


이문식이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며

왕따 남학생과 교수를 싸움붙이는 장면이 있는데

애국가를 배경으로한 이 싸움은

한국 사회구타유발적 요소를 압축시켜 보여주는 듯 하다.



.



영화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타유발적 모습들을 러닝타임 동안 끊임없이 보여준다.

구타 유발자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구타유발적 모습이 절정에 이를 때 쯤

구타 유발자 집단의 우두머리인 한석규(경찰)는



"오늘 여기서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는겁니다. 이제 그만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시죠. "


상황을 정리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여제자는 교수와 차를 타고

마을 녀석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간다.


영화 처음에 그들이 나타났던 방식 그대로 말이다.

 



삼겹살 그리고 우리들



하지만, 그들이 겪고 당했던 것들은 다 잊혀질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떨까?


" 매달 들어오는 월급 보고 참는거지 다 그런거야 잊어버려"

"야 원래 그런거야 까일 땐 까이더라도 열심히 하고 저녁에 술 한잔 마시면서 풀고 그러는거야 그게 싸나이지"

"아이 새끼 뭐 그거갖고 그래 내가 오늘 쏠테니까 다 잊어버려"

너와내가 보고 듣고 겪었던 직장에서, 군대에서, 학교에서의 부조리한 행위가

상급자가(혹은 하급자에게) 건네는 고기 한 점과 소주 한 잔 또는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 명세서로

모두 깔끔하게 처리되고 지워지는 구타유발적 상황.

영화의 포스터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부조리함을 외면하게 해주는 이 모든 것을

삼겹살로 상징해서 보여준다.

 

'구타유발자들'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어휴 저 능글맞은 교수놈, 답답한 여제자, 비열하고 더러운 마을 녀석들' 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을 때

우리들이 즐겨먹는 삼겹살을 화면에 비추며 이건 사실 너희들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러는 너는 뭐가 그렇게 깨끗하냐 개새끼야!라는 직접적인 외침과 함께 말이다.

즉, 영화는 사실 우리 자신도 저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역설하며

우리들 자신의 구타유발적 요소를 들춰낸다. 





반복 

  

"때린 사람은 경찰이 됐어요

근데 맞던 새끼는 아주 존나게 또 맞지"


변태 교수도, 속물 여대생도, 마을 패거리도

한석규의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라는 말에 동의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제 폭력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진저리나는 공포로 다시는

다가오지 않게 되는걸까?


잊어버리기로 했기 때문에 반복된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던 한석규가 죽었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한석규는 나타난다.

 

삼겹살만 입에 넣어준다면

쉽게 잊어주고 참아주는 우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는 특정 배경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다시 다가올 씁쓸한 구타유발자들의 세계를 예견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