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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우측 보행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좌측 보행이 규칙이었다.
그 당시 좌측 보행은
슬기로운 어린이가 지켜야 할
도덕 규범 중 하나였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규칙을 잘 지켰다.
.
초등학교 5 학년이던 어느 날
담임 선생이 나에게
6 학년 주번을 하라고 했다.
주번은
학생들에게 등교 지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측 통행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좌측 통행을 요구해야 한다.
주번이던 나는
6 학년 형에게
좌측통행을 요구했다.
6 학년 형은 내 요구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방과 후 체육 창고로 올 것을 요구했다.
나는 6 학년 형의 요구에 따랐다.
그리고 창고에서 맞았다.
내가 처음으로 겪었던 학교 폭력이었다.
아직도 싸대기를 맞았을 때의 얼얼함이 생생하다.
체육창고에 있던
허들이나 봉을 들고 저항해봤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지만
이미 아득한 과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고통 속에서 살다가
야금야금 죽어가기를
가끔씩 소원하는 것 뿐이다.
.
수십 년이 지난 후,
지금 와서 보니
좌측통행은 온데간데없고
우측통행 표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내 싸대기와 복부를 걸고 지켰던
좌측통행이라는 가치는
어느새 불법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왼쪽으로 걸었으며,
사람들에게 왼쪽으로 걸으라고
그렇게 악을 썼을까?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난 무엇을 얻었나?
없다.
폭력에대한 트라우마 정도?
생각하니
화가 나서
왼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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