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잡설

내가 지킨 좌측통행

Page T 2017. 11. 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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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우측 보행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좌측 보행이 규칙이었다.


그 당시 좌측 보행은

슬기로운 어린이가 지켜야 할

도덕 규범 중 하나였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규칙을 잘 지켰다.


.


 초등학교 5 학년이던 어느 날

담임 선생이 나에게

6 학년 주번을 하라고 했다.


주번은

학생들에게 등교 지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측 통행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좌측 통행을 요구해야 한다.


주번이던 나는

6 학년 형에게

좌측통행을 요구했다.


6 학년 형은 내 요구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방과 후 체육 창고로 올 것을 요구했다.


나는 6 학년 형의 요구에 따랐다. 

그리고 창고에서 맞았다.

내가 처음으로 겪었던 학교 폭력이었다.

아직도 싸대기를 맞았을 때의 얼얼함이 생생하다.


체육창고에 있던

허들이나 봉을 들고 저항해봤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지만

이미 아득한 과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고통 속에서 살다가

야금야금 죽어가기를

가끔씩 소원하는 것 뿐이다.


.


수십 년이 지난 후,

지금 와서 보니

좌측통행은 온데간데없고

우측통행 표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내 싸대기와 복부를 걸고 지켰던

좌측통행이라는 가치는

어느새 불법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왼쪽으로 걸었으며,

사람들에게 왼쪽으로 걸으라고

그렇게 악을 썼을까?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난 무엇을 얻었나?


없다.


폭력에대한 트라우마 정도?


생각하니

화가 나서

왼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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