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랑카(Barangka)는 필리핀에 있을 때 약 4개월 정도 머물던 곳이다.
원래는 카티푸난의 MyPlace라는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관련 글 링크)
기숙사 비용으로 월 25~30만 원 정도 나가는 비용이
나에게는 좀 부담이 됐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하필이면, 갑자기,
매복+누운사랑니 및 다른 치아들에 문제가 생겨서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필리핀 현지 치과 치료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필리핀 치과(덴탈 클리닉)에서
오른쪽 아래 매복+누운 사랑니를 발치하고
오른쪽 위 사랑니도 발치했다.
그리고 앞니 뒤 쪽을 떼웠고
26번? 27번? 어금니는 신경치료 후 아말감 처리를 했다.
특히, 오른쪽 아래에 누워있는 매복사랑니를 뽑을 때는
덴탈 클리닉 의사가 본인 혼자 못 한다고
외부에서 치대 교수를 불러왔었다.
덴탈 클리닉으로 찾아온 치대 교수가
가방에서 꺼내던 도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입 못 다물게 하는 기구랑
못이랑 망치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의자에 반 쯤 누워 대기하고 있던 나는
그 도구들을 보자마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발치 과정은 거의 고문수준이었다.
간호사는 내 머리통을 잡아 누르고 있었고
덴탈 클리닉 의사는 치대 교수 옆에서 추가 마취제와 썩션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대 교수는 잇몸을 찢고 못(?)과 망치(?)로 치아를 부수고
집게(?)로 부숴진 치아 조각을 뽑아냈다.
내 기억으로는 한 2시간 정도 그 짓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 왼쪽
누운 매복 사랑니를 뽑았는데
체감상 한 5분 뚝딱 하니까 다 뽑히더라.
황당함과 동시에
필리핀에서 당했던 고문이 떠오르면서
'한국에서는 이렇게 쉽게 뽑을 걸 왜 거기서 그 고생을 했을까...'
억울한 마음이 들었었다.
아무튼 당시 필리핀에서 치과 치료로 들어간 돈만
약 25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1년치 기숙사비를 치과 치료 비용으로 다 사용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카티푸난의 MyPlace를 떠나서
방 값이 저렴한 바랑카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바랑카 마을의 방 값은 다양했다.
1인실 기준으로 1,000페소(약 2~3만원) 짜리부터 6,000페소(약 15만 원) 짜리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방이 구비되어 있었다.
룸 컨디션을 설명해보자면,
1000페소 짜리 집은 집 안에 수도가 없다.
샤워실도 야외에 있다.
샤워실은 '샤워실'이라기보다는
'샤워기(라고 부르지만 수도꼭지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가
야외에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방은 1인실이기는 한데 완전히 밀폐된 공간은 아니다.
공중화장실 칸막이처럼 천장 부분이 뚫려있다.
방 안에는 정말 딱 방만 있다고 보면 된다.
침대라고 불리는 넓은 나무판자가 있고
책상이라고 불리는 좁은 나무판자가 있기는 한데
가구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말 그대로 나무판자이기 때문이다.
의자는 없다.
벽에는 개미들이 기어다니고
천장 위 지붕 쪽에서는
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는 가끔씩 바퀴벌레가 눈에 띄었다가
순식간에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방 안에 전등은 없다.
당연히 전기도 없다.
(거실에는 있다.)
어둠만 존재할 뿐이다.
아침에는 약간 어둡고,
밤에는 매우 어둡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방을 밝히고 싶다면 손전등을 사용해야하는데
굳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어둠 속에서 바퀴벌레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괜히 손전등을 켜서 바퀴벌레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해골물 작전)
화장실도 극혐이었는데
정확히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너무 극혐이어서 뇌가 기억에서 삭제해버렸나보다.
6000페소 짜리 방은 나름 괜찮다.
2인실이라서 2명이서 살면 3000페소 씩 나눠서 내면 된다.
혼자 살 거면 6000페소 내고 혼자 살면 된다.
전기세가 포함된 가격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다.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어도 전기세가 추가되지 않는다.
애초에 창문형 에어컨이라서 전기세도 많이 안 나갈 거다
다만,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다.
화장실은 화장실처럼 생겼고
샤워실은 샤워실처럼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암튼...
꽤 많은 고난과 즐거움의 추억이 녹아있는 곳이
바로 바랑카였다.
예전에 살던 1,000페소 짜리 꾸리꾸리한 집은 굳이 둘러보고 싶지 않아서
방문하지 않았고
개중에 가장 괜찮았던 6,000페소 짜리 집 한 곳만 다시 방문해보았다.
방문해보니 단 하나도 바뀐 부분이 없었다.
MyPlace같은 경우는 새 건물이 낡아버려서
그 차이점이 확연하게 보였지만
이 곳은 처음 방문했을 때 부터 좀 낡아있던 곳이라서 그런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식탁, 똑같은 샤워실 등등...
마치 과거로 돌아 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을 둘러보면서 직원에게 1달 방 값을 물어봤는데
가격도 예전과 비슷했다.
만약에 내가 다시 어려져서 아테네오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면
바랑카 쪽으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낭만 비스무리한 것은 있었지만
너무나 힘든 생활이었다.
나중에 필리핀에서 살게 된다면
이번에는 겁나 비싼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BGC같은 곳)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겠지...?
결론: 돈 벌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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