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잡설

헬조선이라는 변명 속에 . . .

Page T 2015. 9. 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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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 년 동안 꽤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 J가 있었다.


J는 공부를 잘했다.

반에서 항상 1~2 등을 놓치지 않았다.

(전교 1 등과 2 등이 모두 우리 반에 있었다.)


J는 전 과목에 고루고루 흥미를 갖고 있던 친구였다.

과학 숙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을 때

갑자기 다가오더니 머리도 식힐 겸 퀴즈를 내준다며

상대성 이론에 관련된 퀴즈를 내던 녀석이었다.


방학숙제를 하러 미술관 전시회장을 방문해서도

빨리 스윽 돌아보고 집에가서 쉬고싶었던 나와는 달리

그림 하나하나를 온전히 감상하고자 했던 친구였다.

그림 앞에 오랫동안 서있던 우리를 보고는

전시회의 대표 작가이자 교수였던 아저씨가 다가와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감명깊다.'며

우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설명해주셨다.

미대 누나들도 슬며시 우리 옆으로 붙어서 교수님 설명을 같이 들었는데

나는 누나들 얼굴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반면

그 친구는 필기까지 해가며 미대 누나들보다 더 열심히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한 겨울 영하 눈밭에서도

다음 학년 체육 실기 시험 준비하겠다고

근처 고등학교에서 골밑 슛을 천 번 넘게 연습하던 J.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내가 감탄했던 것은

그 친구의 성품 (혹은 준법 정신)이었는데,

예를 들어 왕복 1 차선 도로가 앞에 있고

횡단보도가 50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면

다른 친구들은 모두 무단횡단을 하는데

그 친구만은 50미터를 뛰어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핀잔을 줬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우리들이 잘못되었다며 나무라던 친구였다.


중 3이 되고 그 친구는 외고로, 나는 일반 인문계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학교가 다르다보니 관계가 소원해졌고

어느 순간이 되니 서로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옛날에 친했던 친구들을 생각하다가

J가 떠오를 때면 나는 항상

'J는 검사나 판사하면 진짜 제대로 할텐데. J가 못하면 진짜 한국은 문제 있는거지.'

이런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고 J 는 지금 판사다.


.


'그래 저 친구, 저기까지는 될 녀석이야.' 생각했던 녀석들이

어느 지하 2 층 피씨방에서 희망 없이 밤새도록

리그오브레전드 계급이나 올리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면,

(물론 다이아 1 이상이나 인기 롤 BJ 정도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 역시도

'아 정말... 헬조선은 헬조선이구나.

저런 애가 어떻게 저렇게 망가져?'

생각했을텐데,


오랫동안 봐오면서

정말 되겠다 생각했던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그들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현재 올라서 있다.


물론 100%라는 것은 없으니

(나처럼) 약간 운이 따르지 않아 원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가더라.


.


물론 가정, 사회, 인간관계, 관습 등에 있어서

'헬조선 지옥 불반도'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괜히 '헬조선'이라는 유행어에 휩쓸려

'헬조선이기 때문'이라는 변명에 나를 가둬두고

나의 노력을 멈춰버리는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다.


'헬조선'에 있기 때문에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못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게임도 HELL 난이도가 제일 재미있는 법...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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