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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묵었노.'
내 아버지도
나를 마주칠 때면 언제나
이 말씀을 하곤하셨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 말을
배곯고 산 세대의
구시대적이고 통례적인
인사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다.
.
먹는게 참 귀했다던 그 때 그 시절.
자신 하나 먹고 살기도 막막했다던 그 시절,
그런 시절을 겪어온 사람이
누군가에게 '밥 먹었냐' 묻는다는 것은,
'나도 배고프고 말라 비틀어져 죽을 것 같은 형편이지만
밥이 있다면 기꺼이 너에게 넘겨주겠다.
그만큼 널 사랑한다.'
는
무한한 사랑의 감정이 함축된 인사말일진데...
.
서툴게 포장된 '밥 먹었냐'는 말 뒤에 숨은
아버지의 그 여리고도 깊은 사랑을,
아닌 듯 하지만 사실은
내가 바라봐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아버지의 그 여리고도 깊은 사랑을,
난,
너무도 쉽게
'네 먹었어요.' 라는 거짓말로
무시했었다.
몇 시간이 멀다 하고 나에게 건네오셨던 그 사랑의 인사는
나의 거짓말과
아버지와 나 사이로 닫힌 방 문에 가로막혀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
그렇게 수 십 년,
난 아버지의 그 작은 부분 하나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고,
지금은 정말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곳으로
아버지는 떠나버렸다.
볼 수 있음에도 외면하였고,
외면했던만큼 후회로 되돌아오는
그 당시의 기억들이
오늘따라 더 많이
서럽게 떠오른다.
그 길고도 긴 세월동안
아버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는
지금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면,
당신 앞에 서서
'나는 당신을 봅니다.'
이야기 할 수 있을거라고
마음으로 중얼거려보지만
이제 나는
아버지의 아무것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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