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잡설

아버지 03

Page T 2015. 4. 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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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묵었노.'


내 아버지도

나를 마주칠 때면 언제나

이 말씀을 하곤하셨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 말을

배곯고 산 세대의

구시대적이고 통례적인

인사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다.


.


먹는게 참 귀했다던 그 때 그 시절.

자신 하나 먹고 살기도 막막했다던 그 시절,


그런 시절을 겪어온 사람이

누군가에게 '밥 먹었냐' 묻는다는 것은,

'나도 배고프고 말라 비틀어져 죽을 것 같은 형편이지만

밥이 있다면 기꺼이 너에게 넘겨주겠다.

그만큼 널 사랑한다.'

무한한 사랑의 감정이 함축된 인사말일진데...


.


서툴게 포장된 '밥 먹었냐'는 말 뒤에 숨은

아버지의 그 여리고도 깊은 사랑을,


아닌 듯 하지만 사실은

내가 바라봐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아버지의 그 여리고도 깊은 사랑을,


 난,

너무도 쉽게 

'네 먹었어요.' 라는 거짓말로

무시했었다.


몇 시간이 멀다 하고 나에게 건네오셨던 그 사랑의 인사는

나의 거짓말과

아버지와 나 사이로 닫힌 방 문에 가로막혀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


그렇게 수 십 년,

난 아버지의 그 작은 부분 하나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고,

지금은 정말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곳으로

아버지는 떠나버렸다.


볼 수 있음에도 외면하였고,

외면했던만큼 후회로 되돌아오는

그 당시의 기억들이

오늘따라 더 많이

서럽게 떠오른다.


그 길고도 긴 세월동안

아버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는


지금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면,


당신 앞에 서서

'나는 당신을 봅니다.'

이야기 할 수 있을거라고

마음으로 중얼거려보지만


이제 나는

아버지의 아무것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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